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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 개론 4. 신고전학파와 한계혁명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19세기 후반 등장해 20세기 주류 경제학의 토대를 형성한 사상이다. 고전학파가 노동투입량에 기초한 가치론을 주장했다면, 신고전학파는 '한계(marginal)' 개념과 주관적 효용에 기초한 가치론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학 방법론의 혁명적 전환을 의미했기에 '한계혁명(Marginalist Revolution)'이라 불린다. 이번 강의에서는 신고전학파의 등장 배경, 주요 개념, 그리고 정치경제학적 함의를 살펴본다.
신고전학파의 등장 배경
19세기 후반 경제학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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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학파의 한계: 고전학파의 노동가치설은 '다이아몬드-물의 역설'(생존에 필수적인 물은 가치가 낮고, 장신구인 다이아몬드는 가치가 높은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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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물리학의 영향: 미적분학과 미분방정식 등 수학적 도구의 발전, 그리고 에너지 보존 법칙 등 물리학 이론의 영향으로 경제현상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려는 시도가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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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자본주의의 성숙: 생산과 소비의 다양화, 시장경제의 복잡성 증대는 더 정교한 경제분석 도구의 필요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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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적 배경: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의 확산에 대한 이론적 대응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조화를 강조하는 이론이 발전했다.
한계혁명의 선구자들
한계혁명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독립적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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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스탠리 제본스(William Stanley Jevons): 영국의 제본스는 1871년 《정치경제학 이론(The Theory of Political Economy)》에서 효용의 한계감소 법칙과 수학적 접근법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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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멩거(Carl Menger): 오스트리아의 멩거는 1871년 《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Economics)》에서 주관적 가치론과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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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 왈라스(Léon Walras): 프랑스의 왈라스는 1874년 《순수정치경제학 요소(Elements of Pure Economics)》에서 일반균형이론과 경제학의 수학적 공식화를 시도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경제적 가치가 생산에 투입된 노동량이 아니라, 소비자의 주관적 효용과 한계적 결정에 기초한다는 주장이었다.
신고전학파의 핵심 개념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주요 개념과 이론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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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효용이론: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의 총효용이 아니라 '한계효용'(추가 단위의 소비로부터 얻는 효용)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소비량이 증가하면 한계효용은 감소한다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중요한 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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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가치론: 상품의 가치는 객관적으로 투입된 노동량이 아니라, 소비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효용에 기초한다. 이는 고전학파와 마르크스의 객관적 가치론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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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경제인 가정: 개인은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가정이다. 이는 신고전학파의 미시경제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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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균형: 합리적 소비자는 각 상품의 한계효용과 가격 비율이 동일해지는 지점에서 소비를 결정한다(한계효용/가격 = 일정). 이를 '한계효용균등의 법칙'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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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생산성이론: 생산요소(노동, 자본 등)의 가격(임금, 이자 등)은 그 요소의 한계생산성에 따라 결정된다. 이는 노동가치설을 대체하는 분배이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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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균형이론: 왈라스는 모든 시장이 상호연관된 체계 속에서 동시에 균형을 이루는 메커니즘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했다. 이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자동적으로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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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균형분석: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은 1890년 《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Economics)》에서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ceteris paribus)' 가정 하에 개별 시장의 균형을 분석하는 방법론을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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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공급 분석: 마샬은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의 교차점에서 시장 균형이 결정된다는 유명한 '가위 분석'을 제시했다. 이는 오늘날까지 경제학 교육의 기본 모델이 되었다.
신고전학파의 방법론적 특징
신고전학파는 경제학 방법론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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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형식화: 경제현상을 수학적 함수와 방정식으로 표현하는 접근법이 주류가 되었다. 미분, 최적화, 균형 개념이 핵심 분석 도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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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적 방법: 합리적 행위자, 완전경쟁, 완전정보 등의 이상적 가정에서 출발해 경제법칙을 도출하는 연역적 방법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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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분석 중심: 고전학파가 경제성장과 장기적 발전과정을 중시했다면, 신고전학파는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균형상태에 초점을 맞추는 정태분석을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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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독립화: 마샬 이후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는 명칭 대신 '경제학(Economics)'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경제분석에서 정치·사회적 맥락을 분리하려는 경향을 반영한다.
신고전학파의 확장과 발전
초기 신고전학파의 이론은 20세기 들어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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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생경제학: 아서 피구(Arthur Pigou)는 시장실패와 외부효과 개념을 발전시켜 정부 개입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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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경쟁이론: 에드워드 챔벌린(Edward Chamberlin)과 조안 로빈슨(Joan Robinson)은 완전경쟁 가정을 넘어 독점적 경쟁과 과점 시장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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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함수와 성장이론: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 등은 신고전학파 생산함수를 기반으로 경제성장 모델을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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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후생경제학: 케네스 애로우(Kenneth Arrow), 제라드 드브루(Gerard Debreu) 등은 파레토 최적성과 사회후생함수 개념을 발전시켰다.
신고전학파에 대한 비판과 대응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다양한 비판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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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 가정: 완전경쟁, 완전정보, 합리적 경제인 등의 가정이 현실과 괴리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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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론적 개인주의의 한계: 사회는 개인의 단순한 합이 아니며, 제도와 권력관계 등 집단적 요소를 간과한다는 비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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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제도적 맥락 무시: 추상적 모델에 치중해 경제현상의 역사적·문화적·제도적 맥락을 간과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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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과 변화 과정 경시: 케인즈는 신고전학파가 불확실성의 중요성을 간과한다고 비판했고, 슘페터는 동태적 변화와 혁신 과정에 대한 무관심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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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범적·이데올로기적 편향: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신고전학파 이론이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을 가진다는 비판이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응해 신고전학파 내부에서도 제한된 합리성, 정보 비대칭, 거래비용 등의 개념을 도입해 이론을 발전시켜 왔다.
정치경제학적 함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등장은 정치경제학적 측면에서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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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탈정치화: 경제현상을 정치·사회적 맥락과 분리해 기술적·객관적으로 분석하려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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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노동 관계의 재해석: 고전학파와 마르크스가 강조한 계급관계와 착취 개념이 한계생산성에 따른 '공정한' 분배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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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역할의 최소화: 시장의 자동조정 메커니즘과 효율성을 강조함으로써 국가 개입의 필요성을 축소하는 이론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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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와 효용주의: 사회후생을 개인 효용의 합으로 보는 관점이 강화되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20세기 내내 주류 경제학의 위치를 차지했으며, 정책 결정과 경제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현실 경제와의 괴리, 다양한 위기에 대한 설명력 부족 등으로 인해 케인즈주의, 제도주의, 행동경제학 등 대안적 접근법의 도전을 받아왔다.
다음 강의에서는 신고전학파가 간과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을 살펴볼 것이다. 제도주의는 경제현상을 더 넓은 사회적·역사적·제도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로, 정치경제학적 전통을 복원했다는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