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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역사 기본 23. 현대 스페인의 유럽 통합과 경제 발전
프랑코 독재 종식 이후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스페인은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국제 사회, 특히 유럽 공동체에 통합되면서 경제적·사회적으로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 이 시기 스페인은 상대적으로 폐쇄적이고 후진적이었던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개방 경제로 탈바꿈하며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여기서는 스페인의 유럽 통합 과정과 그에 따른 경제적 변화, 그리고 1990년대 스페인의 국제적 위상 강화를 살펴본다.
유럽 공동체 가입과 국제적 고립 종식
유럽 공동체 가입 과정
스페인의 유럽 공동체(European Community, EC) 가입은 프랑코 시대의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 유럽의 일원으로 복귀하겠다는 국가적 열망의 실현이었다. 스페인은 이미 1962년 프랑코 정권 시절에도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 신청을 했으나, 독재 체제를 이유로 거부당했다. 민주화 이후 펠리페 곤살레스(Felipe González) 총리가 이끄는 사회당 정부는 유럽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1977년 7월, 민주화된 스페인은 공식적으로 유럽 공동체 가입을 다시 신청했다. 가입 협상은 8년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이는 스페인 농업 부문의 경쟁력과 노동 시장 개방 등에 대한 기존 회원국들의 우려 때문이었다. 특히 프랑스는 스페인의 농산물이 자국 시장을 위협할 것을 우려했다.
마침내 1985년 6월 12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가입 조약이 마드리드에서 체결되었고, 1986년 1월 1일부터 스페인은 유럽 공동체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이는 스페인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유럽 공동체 역시 지중해 지역으로 확대되는 중대한 변화를 맞이했다.
NATO 가입과 안보 정책의 변화
유럽 공동체 가입과 함께 스페인의 국제적 위상을 결정지은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이었다. 스페인은 1982년 5월 30일 NATO에 가입했으나, 같은 해 10월 집권한 사회당은 선거 공약으로 NATO 탈퇴 국민투표 실시를 약속했었다.
그러나 집권 후 펠리페 곤살레스 총리는 입장을 바꿔 NATO 잔류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이는 냉전 구도 속에서 서방 진영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유럽 공동체 가입에도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현실적 판단이었다. 1986년 3월 12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스페인 국민은 조건부 NATO 잔류(핵무기 배치 금지, 군사력 감축, 미국 군사기지 축소 등의 조건)를 52.5%의 찬성으로 선택했다.
NATO와 유럽 공동체 가입으로 스페인은 유럽과 대서양 안보 체제에 완전히 통합되었고, 프랑코 시대의 외교적 고립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유럽 통합에 따른 경제적 변화
경제 개방과 구조 조정
유럽 공동체 가입은 스페인 경제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가입 조건으로 스페인은 관세 장벽을 단계적으로 철폐하고, 시장을 개방해야 했다. 이는 보호받던 국내 산업에 큰 도전이었지만, 동시에 유럽 시장에 대한 접근성 향상으로 수출 기회가 확대되는 이점도 가져왔다.
1980년대 중반 사회당 정부는 과감한 산업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비효율적인 중공업과 조선업 등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상당한 실업과 사회적 갈등이 발생했다. 특히 북부 공업 지대인 아스투리아스와 바스크 지방은 심각한 산업 공동화를 경험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스러운 변화는 장기적으로 스페인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구조조정을 통해 살아남은 기업들은 더욱 효율적이고 국제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새로운 성장 산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유럽 기금과 인프라 발전
유럽 공동체 가입의 가장 가시적인 혜택 중 하나는 유럽 구조기금(European Structural Funds)과 결속기금(Cohesion Funds)의 지원이었다. 스페인은 역내 소득 수준이 낮은 국가로 분류되어 이러한 기금의 주요 수혜자가 되었다. 1986년부터 2006년까지 스페인이 받은 순 유럽 기금은 약 1,180억 유로에 달했다.
이 기금들은 주로 인프라 개발에 사용되었다. 고속도로(Autovías), 고속철도(AVE), 항만, 공항 등 교통 인프라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마드리드-세비야 고속철도(1992년 개통)를 시작으로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광범위한 고속철도 네트워크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통신, 상하수도, 환경 시설 등 기초 인프라도 크게 개선되었다.
유럽 기금은 또한 교육, 연구개발, 중소기업 지원 등 미래 성장 동력 육성에도 투자되었다. 덕분에 스페인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유럽 선진국 수준의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외국인 투자 유입과 기업 국제화
유럽 공동체 가입 이후 스페인으로의 외국인 직접투자가 급증했다. 유럽 단일 시장 접근성, 상대적으로 저렴한 노동력, 지리적 위치 등이 투자 유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자동차 산업에서 폭스바겐, 푸조-시트로엥, 르노 등 유럽 제조업체들이 스페인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설립했다.
또한 금융, 통신, 에너지 등 서비스 부문에서도 유럽과 미국 기업들의 투자가 활발했다. 이러한 외국인 투자는 기술 이전, 경영 노하우 도입,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
동시에 스페인 기업들도 국제화를 시작했다. 텔레포니카(Telefónica), 산탄데르(Santander), BBVA 등 대형 기업들은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해외 시장에 적극 진출했다. 1990년대 말부터는 스페인이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최대 투자국 중 하나가 되었으며, 이는 스페인 기업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높였다.
1992년: 스페인의 국제적 도약의 해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2년은 현대 스페인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해다.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제25회 하계 올림픽은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이룬 새로운 스페인의 모습을 전 세계에 선보이는 무대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흔히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올림픽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올림픽을 계기로 바르셀로나는 도시 재생의 모범 사례가 되었다. 해안가 산업 지역을 현대적인 주거 및 레저 공간으로 탈바꿈시켰고, 도시 전체의 인프라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올림픽 이후 바르셀로나는 유럽의 주요 관광 및 비즈니스 중심지로 부상했으며, 이른바 '바르셀로나 모델'은 세계 여러 도시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스페인 선수들도 역대 최고의 성적(금메달 13개, 총 22개 메달)을 거두며 국가적 자긍심을 높였다. 올림픽은 또한 스페인 기업들이 국제적 무대에서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고, 스페인 관광 산업의 전성기를 열었다.
세비야 엑스포
1992년 4월부터 10월까지 세비야에서는 '발견의 시대(The Age of Discovery)'를 주제로 한 세계 박람회(Expo '92)가 개최되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한 이 행사에는 112개국이 참가했으며, 총 4,10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세비야 엑스포를 위해 도시 인프라가 대대적으로 개선되었다. 마드리드-세비야 고속철도가 개통되었고, 새로운 공항, 다리, 도로가 건설되었다. 특히 알라메다 데 헤르쿨레스(Alameda de Hércules) 다리와 같은 혁신적인 건축물들은 현대 스페인 건축의 대표작으로 남게 되었다.
엑스포는 스페인의 문화적 역량을 선보이는 무대였으며,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드리드 유럽 문화 수도
1992년 마드리드는 유럽 문화 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로 지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프라도 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 등 주요 문화 시설이 확장·개선되었고, 다양한 문화 행사가 개최되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세비야 엑스포, 마드리드 유럽 문화 수도라는 세 가지 국제적 행사가 같은 해에 개최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스페인 정부는 이른바 '92년 프로젝트'를 통해 민주화 이후 현대화된 스페인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키고자 했으며, 이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경제 호황과 부동산 버블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의 경제 호황
1994년부터 2007년까지 스페인 경제는 유럽 내에서 가장 역동적인 성장을 보였다. 이 기간 연평균 GDP 성장률은 3.5%를 기록했으며, 실업률도 1994년 24%에서 2007년 8%로 크게 감소했다.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은 건설업과 관광업이었다. 저금리, 유럽 기금, 국내외 투자 확대 등이 건설 붐을 촉발했고, 주택 가격은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약 200% 상승했다. 해안가를 중심으로 대규모 관광 리조트와 주택 단지가 개발되었으며, 외국인들의 주택 구매도 급증했다.
관광업 역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1990년 4,700만 명이던 외국인 관광객 수는 2007년 5,900만 명으로 증가했으며, 관광 수입도 크게 늘었다. 스페인은 프랑스와 함께 세계 최고의 관광 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유로화 도입(1999년 금융 거래, 2002년 현금 유통)으로 거시경제적 안정성이 높아지고 금리가 하락하면서 소비와 투자가 더욱 활성화되었다.
부동산 버블과 구조적 취약성
그러나 이 시기 스페인 경제 성장은 과도한 건설업 의존과 부동산 버블이라는 취약점을 안고 있었다. 2007년 건설업은 스페인 GDP의 16%, 고용의 13%를 차지했으며, 이는 유럽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또한 성장의 질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노동 생산성 증가율은 저조했고, 연구개발 투자는 유럽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청년 실업률이 구조적으로 높은 노동 시장의 이중구조도 해결되지 않았다.
가계부채도 급증했다. 저금리와 주택 가격 상승 기대로 많은 스페인 가계가 능력 이상의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았고, 이는 후에 금융위기의 심각한 타격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스페인 경제가 유럽에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는 원인이 되었다.
관광 산업의 성장과 영향
관광 대국으로의 부상
관광업은 유럽 통합 이후 스페인 경제의 핵심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해변, 풍부한 문화유산, 독특한 음식과 축제 등이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태양과 해변(sol y playa)' 관광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상품이 되었다.
정부는 관광 인프라 개발에 적극 투자했다. 공항, 도로, 호텔, 리조트 등이 확충되었고, 관광 마케팅도 강화되었다. 특히 1990년대부터는 대중 관광에서 벗어나 고급화, 다변화 전략을 추진했다. 문화 관광, 도시 관광, 생태 관광, 미식 관광 등 다양한 형태의 관광이 발전했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세비야, 그라나다, 발렌시아 등은 국제적인 도시 관광 목적지로 발전했으며, 내륙 지역에서도 역사 문화 관광이 활성화되었다. 특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은 종교적 의미를 넘어 문화 관광의 아이콘이 되었다.
관광 산업의 경제적·사회적 영향
관광업은 스페인 GDP의 약 11~14%, 고용의 12~15%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 되었다. 특히 발레아레스 제도, 카나리아 제도, 안달루시아, 발렌시아, 카탈루냐 등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는 경제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관광업의 급성장은 부작용도 가져왔다. 해안가의 무분별한 개발로 환경 파괴가 심각해졌고, 수자원 고갈, 쓰레기 문제 등 환경 부담이 커졌다. 또한 관광객 집중으로 인한 주민 생활 불편, 주택 가격 상승, 지역 정체성 약화 등 사회문화적 문제도 제기되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주요 관광 도시에서 '과잉관광(overtourism)'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특히 바르셀로나에서는 관광객 수 제한, 관광세 도입 등 관광 억제 정책이 도입되기도 했다.
유럽 경제 통합의 결과
경제적·사회적 성과
유럽 통합 이후 20여 년간 스페인은 유럽 내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룬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1인당 GDP는 1986년 유럽 평균의 72% 수준에서 2007년 105%로 상승했다. 물가 안정, 재정 건전성 제고, 금융 시스템 현대화 등 거시경제적 성과도 뚜렷했다.
사회 지표도 크게 개선되었다. 교육 수준이 향상되었고, 기대수명이 증가했으며, 사회 안전망이 확충되었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확대되었고, 문화적 개방성도 높아졌다.
인프라 측면에서는 유럽 최고 수준의 교통·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특히 고속철도, 고속도로 등 교통 인프라는 국토 통합과 지역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지속된 지역 격차와 구조적 문제
그러나 빠른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지역 간 경제 격차가 여전히 컸으며, 특히 내륙 지역(에스트레마두라, 카스티야 라만차 등)과 해안 지역(카탈루냐, 마드리드, 바스크 등) 간의 격차가 지속되었다.
노동 시장의 이중구조도 개선되지 않았다. 정규직 노동자는 강한 고용 보호를 받았지만, 비정규직 비율이 30%를 넘는 등 노동 시장 진입자와 청년층은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였다. 청년 실업률은 호황기에도 유럽 평균의 두 배 수준이었다.
교육과 연구개발 투자도 충분하지 않았다. 스페인의 연구개발 투자는 GDP 대비 1.2% 수준으로 유럽 선진국(2~3%)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고등교육의 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질적 수준과 산업 연계는 미흡했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해 스페인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게 된다.
결론: 유럽 통합 시대 스페인의 성과와 과제
1986년 유럽 공동체 가입부터 2007년 금융위기 직전까지 스페인은 경제적·사회적으로 큰 변화와 발전을 이루었다. 프랑코 시대의 폐쇄적·후진적 경제에서 벗어나 현대적 개방 경제로 탈바꿈했으며,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특히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세비야 엑스포는 민주화와 현대화를 이룬 새로운 스페인의 모습을 세계에 알리는 상징적 행사였다. 스페인 사회는 더욱 개방적이고 다원적으로 변화했으며, 삶의 질도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경제 성장 과정에서 부동산 버블, 과도한 건설업 의존, 낮은 생산성, 노동 시장 이중구조 등 구조적 취약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표면화되어 스페인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통합을 통한 스페인의 경제적·사회적 발전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성공적 이행과 함께 현대 스페인 역사의 가장 큰 성취로 평가된다. 스페인은 유럽 통합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유럽 단일 시장과 통화 통합의 혜택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국가로 볼 수 있다.